[서평] 이재원 「인도차이나전쟁과 프랑스 식민주의 이념」 (홍문각, 2023)

I. 책 소개

나는 정의를 믿지만, 그보다 먼저 나의 어머니를 지킬 것입니다.”

알제리 전쟁이 한창이던 1957년, 알베르 카뮈(Albert Camus)가 스톡홀름에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후 기자회견에서 한 발언이 프랑스 지식인 사이에 거센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알베르 카뮈는 프랑스령 알제리 출신의 ‘프랑스인’ 소설가로, 알제리 전쟁 시기 공공연하게 프랑스의 식민지 정책을 비판하면서도 알제리의 전면적인 독립은 지지하지 않는 다소 이중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위의 발언은 그가 ‘알제리인의 자결권’과 ‘프랑스의 식민주의’ 사이에서 겪은 내적 갈등을 드러낸다. 그가 어머니를 지킬 것이라고 발언한 이유는 그가 자신의 어머니가 살아 온 터전인 알제리의 독립을 ‘알제리를 잃는 것’과 같은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카뮈의 개인적 서사를 고려하지 않을 수는 없으나, 그는 결국 프랑스와 알제리의 불가분을 우선시했고, 이에 지식인들의 거센 뭇매를 맞았던 것이다. 카뮈의 친구이자 그와 함께 프랑스 실존주의 문학의 대표자였던 장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가 알제리의 독립에 관한 카뮈와의 견해 차이로 그와의 인연을 단절했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런 선택은 이미 국가적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었으며, 그 대상은 알제리뿐이 아니었다. 프랑스는 공식적으로는 자유와 평등, 형제애의 원칙을 추구하는 나라임을 자처하면서도 제국의 “마지막 기회”였던 알제리와 인도차이나를 비롯한 식민지에는 이를 적용하지 못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였다. 1858년부터 백여 년간 프랑스의 식민 지배 통치를 받았던 인도차이나는 8년에 걸친 프랑스와의 전쟁을 끝으로 이를 종식하였다. 따라서 인도차이나의 독립 서사에서 일반적으로 주목받는 것은 단연 인도차이나전쟁일 것이다. 그런데 2차대전 이후 국제 무대에서 반식민주의가 승리하던 분위기 속에서 “프랑스가 무력을 통해 아시아 식민지에서의 그들의 지배를 유지하려 시도하는 유일한 국가”였다는 점을 지나칠 수는 없을 것이다. 프랑스를 “유일한 국가”로 만든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왜 프랑스는 이토록 모순적인 선택을 했던 것일까? 도대체 프랑스인들에게 인도차이나, 더 나아가 식민지는 어떤 존재였기에 프랑스는 이토록 이들을 강하게 붙잡았던 것일까? 「인도차이나전쟁과 프랑스 식민주의 이념」은 이런 궁금증에 명확한 답을 제시하는 저서이다.

제목만을 보고 이 책이 인도차이나전쟁의 개론서인 것으로 오해할 수 있으나, 저자가 진정으로 탐구하고자 한 것은 ‘인도차이나전쟁의 역사’가 아닌 ‘식민지 전쟁에 대한 프랑스와 프랑스인들의 여론’, 더 정확하게는 “여론의 일반적인 경향”(8쪽)이다. 이 책의 가장 큰 틀이 되는 내용은 프랑스 식민주의 이념의 변화이다. 저자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부터 제네바 협정까지의 프랑스 국민의 여론 변화를 연대순으로 분석하며, 이들이 식민지 정책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를 탐구한다. 다양한 여론 조사와 언론, 정치적 담론을 통해 프랑스 내에서 식민지 전쟁이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 그리고 그것이 국민의 의식 속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했는지를 상세히 다룬다.

저자는 프랑스 본국의 입장과 프랑스인의 식민주의 이념을 조사하기 위해 여론의 유형을 두 가지로 규정한다. 소극적이며 정태적인 일반인의 여론과, 활동적이고 적극적이며 동태적인 주동자의 여론이 바로 그것이다. 일반적 여론의 조사는 여론조사, 정기간행물, 도지사 보고서 등을 통해 활동적 여론의 조사는 [관보], 보고서 등을 통해 이루어진다. 저자는 두 종류의 여론에 대한 단일한 시각이 아닌 다각적인 분석을 통해 사회 전반의 반응과 정책 결정자들의 입장의 차이를 명확히 분석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연구 방법을 통해 저자는 인도차이나전쟁에 대한 프랑스 사회의 복잡하고 다양한 반응과 변화를 보다 심층적이면서도 명확하게 독자들에게 전달할 수 있었을 것이다.

 

II. 프랑스 식민주의 변화

저자는 책의 구성을 시기별로 세 부로 나누었다. 각 시기 구분은 프랑스의 여론과 식민주의 이념이 변화, 혹은 진화하는 시점과 일치하기에 이는 저자의 목적에 부합하는 적절한 구성이라고 볼 수 있다.

1부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프랑스가 식민지 제국을 유지하기 위해 기울인 노력을 상세히 다룬다. 종전 이후 프랑스는 인도차이나에서 민족주의와 반식민주의 운동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식민지 재정복을 시도한다. 하지만, 프랑스의 이러한 노력은 강력한 저항에 부딪히게 된다. 특히 인도차이나 민족주의는 제2차 세계대전이 전개하는 동안 꾸준히, 급격히 성장하였으며, 일본의 일본의 무력 쿠데타 이후 더욱 강해졌다. 반면 종전 직후 프랑스는 식민지 해방에 대한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몇몇 극소수의 극좌 혁명 그룹, 특히 트로츠키주의자들만이 프랑스 제국주의를 진정으로 비판하는 유일한 집단이었다. 프랑스 공산당조차 “위선적인 항의의 단계”(120쪽)를 넘지 못했다며 조롱받았다. 반대로 말하면 거의 모든 정치적 여론이 제국을 온전하게 보존하는, 즉 식민지를 놓아주지 않으려는 국민적 열망을 공유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들은 식민화 정책에 문제가 있음을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인도차이나에 대한 실질적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여론으로는 모이지 않았다. 이는 전후 프랑스가 군사적 강국의 지위를 잃었음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프랑스인들의 미련 때문이었다. 프랑스인들에게 식민지는 프랑스의 위대함을 보장하는 유일한 길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의 만연은 단지 프랑스인의 내면에 자리 잡은 우월 의식 때문만이 아니라, 다양한 사회적 기제의 영향을 받았다. 대다수의 프랑스 정당들이 이념을 초월해 친식민주의적 입장을 취했다. 그와 결을 같이하는 교육 시스템 또한 젊은 세대에게 이러한 인식을 자연스럽게 주입했다.

이처럼 2차 대전 전후 인도차이나에 대한 프랑스 여론은 전반적으로 식민지 제국을 유지하고자 하는 “피상적인 상태의”(132쪽) 열망에 기반하고 있었으며, 이러한 열망은 정치적, 사회적, 교육적 기제를 통해 지속적으로 강화되었다. 이는 프랑스가 인도차이나에서 벌인 군사적 행동과 정책적 결정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전후 반식민주의적 국제 정세 속에서도 프랑스가 식민지 제국의 위상을 유지하려는 이유를 명확히 보여준다. 프랑스인들의 이러한 집단적 의식은 결국 인도차이나 전쟁의 시작과 전개, 그리고 그에 따른 프랑스 내 여론 변화에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

2부는 인도차이나전쟁의 전개와 그에 따른 프랑스 내 여론의 변화를 다루고 있다. 저자는 이 시기를 전쟁의 두 가지 주요 국면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첫 번째 국면은 프랑스가 식민지 재정복을 시도한 시기, 두 번째 국면은 냉전의 중심지로서 인도차이나가 전략적 중요성을 지닌 시기이다.

이 시기 프랑스 식민주의 이념의 변화는 특히 주목할 만하다. 전쟁 이전에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프랑스가 식민지에서 문명화 사명을 다하고 있다는 인식이 강했다. 이는 프랑스가 식민지를 통해 경제적 이익을 취하고 있으며, 문명화와 교육을 제공하여 식민지인들을 ‘개화’시키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인도차이나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이러한 식민주의 이념은 점차 도전을 받게 되었다. 전후의 국제적 분위기와 냉전의 격화, 그리고 인도차이나에서의 지속적인 저항은 프랑스 내에서 식민주의에 대한 회의론을 증대시켰다.

특히 앙리 마르탱 사건은 프랑스 국민의 의식에 질적인 변화를 일으킨 계기였다. 그를 석방하고자 모였던 사람들의 움직임은 베트남의 평화를 위한 투쟁 전개의 결정적 순간으로 평가받는다. 마르탱의 뛰어난 외모와 함께 프랑스인들의 변화 의지를 자극한 그의 서사는 문화적으로 매우 큰 변혁을 불러왔다. 파리에서 발행된 인기 공산주의 잡지 󰡔르갸르(Regard)󰡕는 마르탱을 지지하는 두 개의 특별 호를 발행했는데, 그 제목은 “앙리 마르탱, 프랑스의 선원(Henri Martin: marin de France),” “앙리 마르탱, 자유의 선원(Henri Martin: marin de la liberté)”이었다. 마르탱을 기리는 곡들이 작곡됐으며, 수십만 명이 그의 서사를 담은 연극을 관람하였다. 서구의 반식민주의가 매우 구체적으로, 실천적으로 실행된 대표적 사례로서, 앙리 마르탱 석방 운동은 인도차이나에 무관심했던 이들에게 전쟁의 부당성을 알리고 전쟁을 고발하는 여론을 조성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결국, 인도차이나전쟁은 프랑스 내에서 식민주의 이념의 급격한 변화를 촉발하였다. 이는 프랑스인들이 식민지 전쟁의 정당성과 효용성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품게 한, “프랑스 식민주의 이념의 진화”(12쪽)를 이끌어 낸 계기였다.

3부는 인도차이나전쟁의 마지막 단계와 제네바 협정이 체결되기까지의 과정을 다룬다. 이 시기는 프랑스가 인도차이나에서의 패배를 인정하고, 식민지 제국의 종말을 준비하는 시기였다. 프랑스 국민들은 디엔비엔푸의 패배를 통해 더 이상 식민지를 통해 프랑스의 위상을 유지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는 프랑스가 전쟁을 지속할 의지를 상실하게 만들었으며, 평화 협상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전쟁의 국제화는 인도차이나전쟁을 단순한 식민지 전쟁에서 벗어나 냉전의 일환으로 확장시켰다. 중국과 미국의 개입은 전쟁의 양상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으며, 특히 미국의 군사적 지원을 받는 것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이는 전쟁에 대한 프랑스 사회의 분열을 더욱 심화시켰다. 정치인들은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려 했으며, 공산주의자들과 반공산주의자들 사이의 갈등은 더욱 격화되었다. 이는 프랑스 사회 내에서 식민주의 이념에 대한 비판적 재검토를 촉진했으며, 식민지 전쟁의 정당성에 대한 의문을 증폭시켰다. 제네바 협정은 프랑스 내에서 다양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일부는 이를 통해 전쟁이 종식되었음을 환영했으나, 다른 이들은 프랑스의 패배를 인정하는 것에 대해 불만을 나타냈다. 그러나 대체로 프랑스 사회는 전쟁의 종식과 평화를 맞이하는 것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디엔비엔푸 전투의 패배와 제네바 협정은 프랑스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이는 프랑스가 식민지 제국의 종말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형태의 국가 정체성을 모색하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전쟁의 패배는 프랑스 국민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국가 정체성을 재고하게 만들었고, 이는 식민주의 이념의 근본적인 변화를 촉발시켰다. 이 과정에서 프랑스는 더 이상 식민지 지배를 통한 강대국으로서의 위상을 유지할 수 없음을 깨달았고, 이는 국내 정치와 사회 구조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프랑스의 지식인들은 이러한 변화를 주도하며, 식민지 전쟁의 정당성을 비판하고 새로운 공화국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III. 책의 가치

「인도차이나전쟁과 프랑스 식민주의 이념」의 의의는 프랑스의 식민주의 이념이 인도차이나전쟁 동안 어떻게 형성되고 변화했는지를 심도 있게 분석하여, 그 복잡한 사회적, 정치적 맥락을 명확히 밝혀 전달했다는 점이다. 우선 저자는 프랑스 내 여론 조사, 언론 보도, 정치적 담론 등 신뢰성 높은 자료의 다각적 분석을 통해 프랑스 국민들의 인식과 태도가 시간의 흐름에 따른 환경의 변화에 어떻게 반응하였는지, 그리고 이러한 변화가 식민지 정책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둘째, 저자는 인도차이나전쟁을 국제적 관점에서 조망하며 프랑스의 식민지 정책이 냉전 시대의 국제 정치와 어떻게 얽혀 있었는지를 명확히 전달하였다. 프랑스가 미국의 지원을 받으며 전쟁을 이어간 과정, 중국과 소련의 개입 등이 인도차이나전쟁의 성격을 변화시킨 과정을 분석함으로써, 전쟁이 단순히 프랑스와 베트남 간의 갈등이 아니라 국제적인 권력 투쟁의 일환이었음을 보여준다.

셋째, 저자는 식민주의 이념의 변화가 단지 프랑스와 인도차이나의 관계에서만 끝나지 않고, 프랑스 내의 정치적 변화와 사회적 갈등에도 큰 영향을 미쳤음을 밝힌다. 프랑스의 식민지 전쟁이 국내 정치에 미친 영향과 이를 둘러싼 다양한 사회적 반응을 통해, 프랑스 사회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었는지를 상세히 분석한다. 이를 통해 식민지 전쟁이 단지 ‘본국의 외부’에서 벌어진 사건이 아니라, 프랑스 본국의 정치적, 사회적 구조에도 깊은 영향을 미쳤다는 점을 독자에게 전달하고 있다.

넷째, 저자는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제공한다. 프랑스의 식민주의가 어떻게 스스로를 정당화하고 유지하고 강화하려 했는지, 이러한 과정이 얼마나 폭력적이고 비인간적이었는지에 대한 객관적 사실을 전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를 통해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식민주의에 대한 독자들의 능동적인 판단의 문을 열어두었다.

더불어 베트남 전쟁에 비해 그것이 지닌 가치만큼의 관심을 받지 못했던 제1차 인도차이나전쟁을 이렇게 구체적으로 다룬 저서가 많지 않다는 점도 이 책을 특별하게 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프랑스 식민주의 이념의 변화에 초점을 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도차이나전쟁을 이해하고자 하는 독자에게 강력하게 추천할 만한 저서이다.

이 책을 읽으며 유일하게 아쉬웠던 점은 157쪽 5번째 줄의 오탈자이다.

2주 전 인도차이나는 디엔비엔푸 전투 승전 50주년을 맞았다. 절대 다수의 프랑스인들은 이 전투에서의 패배를 예상하지 못했고, 그렇기에 이는 그들에게 상상하지 못할 충격을 안겨 주었다. 반면 베트남인들에겐 백여 년 동안 염원하고 바랐던 진정한 독립의 가능성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프랑스에게 인도차이나 전쟁에서의 패배는 단지 군사적 실패가 아닌, 프랑스 식민주의 이념의 한계를 드러낸 순간이었다. 오늘날, 디엔비엔푸 전투를 기념하며, 과거의 역사를 통해 현재와 미래를 성찰하고, 그로부터 얻은 교훈을 통해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Aronson, Ronald. “Albert Camus.”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2017.

Henri Martin: marin de France. Paris: Ed. Regardes, 1950.

Henri Martin: marin de liberte. Paris: Ed. Regardes, 1952.

“OUTLOOK IN INDO-CHINA.” The New York Times, January 22, 1947.